Monday, March 14, 2016

할머니 86세 생신


사랑 할머니께,

오늘은 고아한 우리 할머니의 여든여섯 번째 생신이에요. 할머니 생신 축하해요.

오후에는 할머니를 그리워하면서 뒤뜰 화단에 할머니께서 남겨주신 분꽃과 다투라 씨앗을 심었어요. 겨울 동안 잠들어 있던 흙을 삽으로 뒤집고, 단단히 뭉쳐진 흙은 손으로 고슬고슬하게 때까지 부스러트린 , 다시 골고루 흙이 섞일 있도록 두어 뒤집어 주기를 반복하니, 제법 씨를 뿌리기에 좋은 질감으로 변하더라고요. 어느덧 이마에도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고 몸이 후끈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포근한 햇살이 등을 비추고, 부드러운 봄바람이 이마를 스치는 순간 이렇게 온전히 제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있다는 것만으로도 평온하고 감사했어요.

할머니께서 궁금해하실 같아서 요즘 우리 정원이 변화하는 모습을 전해드릴게요. 자목련, 벚나무, 복사꽃 그리고 수선화는 활짝 만개하였고요. 잔디와 배꽃도 이제 꽃망울을 터뜨렸어요. 조팝나무와 라일락은 꽃망울이 맺히고 있고, 치자와 철쭉도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 모습이 보여요. 그리고 텃밭에 심어놓은 각종 상추와 케일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답니다.

지난 월요일에는 책을 읽다가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펑펑 울었어요. 글의 문맥상 작가는 집필하는 동안에 아버지를 여읜 이렇게 간략한 문장이 적혀있더라고요. “내일은 인생에서 아버지 없이 맞이하게 되는 토요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부분을 조용히 되뇌다 잠시 책을 덮었어요. 순간 가슴이 조여와서 깊은 심호흡이 필요했거든요. 호흡이 조금 안정되는가 싶더니, 이내 눈에서 할머니를 향한 벅찬 그리움을 토해내듯 굵은 눈물방울이 쏟아져 내렸어요. 저에게도 작가의 표현대로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에 맞이한 하루하루는 모두 번째였으니까요. 우리 할머니 없이 맞이했던 번째 주말, 여름, 가을, 추석, 생일, 겨울, 크리스마스, 설날, 그리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만큼 가슴 저리던 , 그렇게 아픈 첫날들이 꿈처럼 지나가 버리는가 싶더니, 어느덧 그리움의 시간이 차곡히 쌓여 할머니의 6주기를 앞두고 있네요.

할머니,

조용히 혼자 앉아서 아침을 여는 시간에 처마 끝의 풍경 소리가 일렁거리면 저는 할머니를 느껴요. 그리고 할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전해요. 할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 신뢰, 격려에 감사해요. 평생을 통해서 보여주신 우아하고 품격있는 할머니의 성품과 언행에 감사하고, 절제와 관용의 미덕을 몸소 실천해 주셨음에 감사하고, 깊고 맑은 지혜와 모든 사람을 존중과 배려로 아우르셨던 자애로움에 감사해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문학에 입문했고, 저의 이야기에 열심히 기울여 주시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경청을 배웠고, 할머니의 온화한 눈빛과 따뜻한 관심이 항상 주위를 비추고 있었기에 행복했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할머니의 가르침의 깊이가 헤아려지지 않아요. 할머니의 존재가 저에게는 과분한 인연이었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때도 있어요. 남들에게 할머니의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도 아깝다고 느껴질 때도 있어요. 물론 우리의 추억을 누군가와 나눈다고 해서 닳아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의미 없는 단순한 이야깃거리로 할머니를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아주 좋아하는 그림이나 글을 특별한 날에만 아껴 보고 읽듯이, 할머니와의 추억도 아끼고 아끼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 빗소리 가슴 두드리는 , 눈이 꽃잎처럼 내리는 , 그리고 그리움에 목이 메는 날에만 마음 거울에 비추어 보았죠. 순간 느끼는 순일함이 저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어주었는지 할머니는 이미 모두 알고 계시죠?

할머니,

영원히 사랑하고 평생을 그리워하다 만나러 갈게요. 그날까지 할머니의 손녀로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마음 챙기고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며, 저다움을 잃지 않도록 꾸준히 노력해 나갈 것을 할머니의 생신을 맞아 다시 약속드릴게요.

할머니 태어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 3 13 (음력 2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