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10, 2014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초가지붕에 박 넝쿨 올리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오.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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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라야,

엄마가 사랑한 첫 詩야. 중학교 1학년 때 이 작품을 읽고 엄마는 가슴속에 꼬물거리는 또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처음 느꼈던 것 같아. 그리고 노천명 (1911.9.1 - 1957.6.16) 시인의 문학세계를 사랑하기 시작했단다.

시인의 작품 중에 <밤의 찬미>라는 아름다운 시가 있어. 랄라와 엄마처럼 가을에 태어난 시인은 분명히 우리만큼 가을을 사랑했었지 싶어. <밤의 찬미>는 랄라가 누군가를 사랑할 나이가 되면 그때 좀 더 깊이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꾸나.

엄마가 이 작품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엄마가 꿈꾸는 삶의 이상이 이 詩에 고스란히 적혀있기 때문일 거야. 랄라야. 엄마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자란 서울 토박이 거든. 그런데 이상하게도 엄마는 어려서부터 시골을 동경하며 자란 것 같아. 엄마의 정서에는 빽빽하게 들어선 빌딩 숲과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의 행렬보다는 먼지 나는 흙길을 걸어가면 만나게 되는 정겨운 낮은담에 둘러싸인 시골집이 훨씬 멋있게 느껴지거든. 어느덧 마흔이 된 엄마는 지금도 열세 살 소녀의 엄마가 막연히 동경하던 그 꿈속의 삶을 간절히 소망하며 살고 있단다.

랄라는 엄마와 정 반대의 정서를 가진 차도녀 스타일이잖아. 큰 도시의 바쁘고 활기찬 삶을 좋아하고, 지금도 샌프란시스코를 그리워하고, 뉴욕을 좋아하고, 서울의 복잡함 마저도 랄라는 즐길 줄 아는 그런 도시 숙녀 우리 랄라. 그런 너에게 엄마와 같은 정서를 가지고, 같은 꿈을 꾸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詩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랄라가 엄마의 딸로 태어났으니까, 엄마가 지향하는 삶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랄라와 함께 나누고 싶은 거야. 그게 전부란다.

그리고 먼 훗 날... 이렇게 마당 가득 하늘과 별과 바람을 들여놓고, 멀리 지나가는 기차의 기적소리를 들으며, 작지만 정갈한 텃밭을 일구고, 이웃과 나눠 가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꽃들이 심어진 꽃밭을 가꾸며, 처마끝에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툇마루에 앉아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을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이 세상 어느 왕국의 여왕도 공주도 부럽지 않아.

그날이 오면, 우리 랄라를 초대할게. 그리고 달빛 아래같이 앉아서 이 詩를 한 번 더 읽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