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오래된 메모나 짧은 글들을 정리하고 있다. 주로 여행하면서 느낀 점들... 변화하는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느낀 점들... 가슴으로 본 영화, 가슴으로 들은 음악, 가슴으로 읽은 책들에 대한 단상들... 그런 글들 사이사이에 할머니의 흔적이 있다. 날짜를 보니 2006.7.11이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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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은 시시각각 그 느낌이 다르다.
애잔한 듯 기울어가는 해를 보고 있자니
할머니 생각에 그냥 가슴이 먹먹해 온다.
지난번 할머니가 입원해 계시던 병실 창 너머로
작은 동산이 있고 그 뒤로 아파트가 몇 채 들어서 있었다.
나는 밤이 도래하기 이전의 그 어스름한 저녁이 찾아오면
어찌나 애가 타던지 혼자서 부산스러워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히려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깜깜한 밤이 찾아와 멀찌감치 서있는 아파트 창에
불빛이 하나둘씩 켜져가자 마음이 놓이곤 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할머니가 창 너머로 바라보실 불빛이 있다는 생각...
그렇게 응시할 수 있는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그처럼 벗이 되고 고마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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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내가 할머니를 모시고 삼성병원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평소에는 엄마나 이모가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가시는데, 내가 한국에 나와 있는 동안에는 나도 손녀딸 노릇을 하고 싶어, 할머니 병원은 내가 모시고 가는 걸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날 집안 어른들은 모두 나를 믿고 외출 중이셨다. 그러던 참에 오전에 병원 갈 준비를 하시던 할머니께서 식도정맥류 출혈로 갑자기 쓰러지신 것이다. 어떻게 내가 손을 써볼 수 없을 만큼 출혈이 너무 심하셨고, 욕실과 거실 모두 이내 핏물 범벅이 되어버렸던 그날.
그때 곁에 랄라가 있었는데... 아직 네 살도 되지 않은 랄라가 쓰러져 계신 왕 할머니한데 자기가 가장 아끼는 발렌타인 인형을 품에 안겨주더니, 컵을 들고 정수기에 물을 내리러 가는 것이었다. 왕 할머니 물드시라고...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119에 전화를 하고 있던 차에 이 모습을 봤는데, 침착하게 찬물을 떠오는 랄라를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나는 이내 울음을 그치고 할머니 소지품과 병원기록 서류들을 챙기면서, 구급차가 도착하자마자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내 구급차에 할머니가 실리고,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우리는 삼성병원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할머니께서는 이미 과다 출혈로 의식이 혼미해지셨고, 점점 눈이 감기셨다. 할머니를 부여안고 반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큰소리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던 것 같다. 할머니 나를 보라고, 내 눈 좀 보라고, 나 안 보고 자꾸 눈 감으면 나 싫어서 그러는 줄 알고서 삐칠 거라고, 내가 얼마나 금쪽같은 할머니 강아진데 안보냐고, 그랬더니 할머니께서 “수미야. 왜 이렇게 추우냐... 할미는 너무 춥다... 발이 너무 추워...” 그러시길래 발을 손으로 만져봤는데 완전히 얼음이었다. 그렇게 할머니 발을 손으로 비비고, 내 가슴에 넣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 발은 좀 따뜻해진 거 같은데, 이번에는 할머니 얼굴빛이 옥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얼마나 무섭고 절망적이었는지 모른다. 이러다가 할머니를 영원히 잃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 하지만 우리 할머니를 이렇게 추위에 떨면서 가시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는 침대로 옮겨졌고 모든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갔다. 응급실 담당 레지던트들이 출혈이 너무 심해서 가망이 없다고... 이미 늦은 것 같다고... 수혈할 피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으니 Intubation을 확보해야겠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갑자기 무릎에 힘이 확 풀리면서 난 응급실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어느 한 분의 다리를 부여잡고 무릎 꿇고 빌었다. “저희 할머니 살려주세요. 제발 저희 할머니 살려주세요.” 그렇게 엉엉 울고 있는데, 주치의 선생님께서 도착하셨고, 목을 절개하고 인공호흡관을 삽입하는 시술은 하지 않기로 하고, 수혈할 피도 바로 도착했다.
나는 선생님을 끌어안고 또 말씀드렸다. “선생님 저희 할머니 추워요. 우리 할머니 좀 안 춥게 해주세요.” 너무 감사한 건, 주치의 선생님께서 신속하게 적절한 지시를 내려주셔서, 할머니 몸 전체를 감쌀 수 있는 하얀 종이 이불이 도착했고, 그 안에는 온풍기 역할을 하는 튜브가 연결되어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그 이불을 덮고 있으면 할머니의 체온을 빨리 올릴 수 있으니 이제 그만 울라고 나를 오히려 안정시켜주시면서 안아주셨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다시 정신 차리고 할머니께서 의식을 잃지 않으시도록 계속 옆에서 말을 붙였던 것 같다. 이 무렵, 한 분 두 분 집안 어른들이 응급실로 도착하셨고, 어느 정도 할머니께서 의식이 돌아오신 뒤, 다급히 응급수술실로 옮겨지셨고, 파열된 식도정맥류를 봉합하는 수술은 아주 성공리에 잘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는 약 2주 정도 병원에 입원해 계셨는데, 나에게는 참으로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할머니를 병실에서 간호해 드릴 수 있는 행복한 시간들이었으니까... 할머니랑 오랜만에 가져보는 오붓한 한때였다. 할머니를 위해서 예쁘게 병실 창가를 꾸미고, 할머니 식사를 챙겨드리고, 책도 읽어 드리고, 할머니 매니큐어도 발라 드리고, 할머니 목욕도 씻겨드리고... 할머니께서는 병실에서 5월 8일 어버이 날을 맞이하셨는데, 우리 손주들끼리 형편대로 돈을 모아 순금에 예쁜 꽃이 수놓인 쌍가락지를 선물해 드렸다. 할머니께서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른다. 과용했다고 뭐라고 하시면서도 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여기셨다. 의사선생님들이랑 간호원들 사이에서도 우리 할머니는 예쁜이 할머니, 손주들이 끔찍이 여기는 할머니라고 소문이 났었다.
그렇게 할머니랑 병실에 있을 때, 가끔 할머니께서 슬픈 눈으로 창밖을 응시하고 계신 모습을 뵈었다. 특히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할머니의 그런 눈빛을 보는 것은 너무 가슴이 아팠다. 할머니의 눈동자에는 죽음의 문턱에서 겪었을 공포와 두려움, 지나온 세월에 대한 사색,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초연함, 남겨질 이들에 대한 애틋함, 이제는 조금씩 주변을 정리해야겠다는 의지, 자식들에게 짐이 된 미안함... 그런 많은 감정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노을이 질 무렵 그 병실에서 바라본 할머니의 옆모습이 떠올라 이런 메모를 남겼을 것이다.
슬픈 순간이었지만, 할머니를 통해 삶과 죽음 사이의 엄숙한 터널을 함께 지나는 경험을 한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 참 좋았다. 아주 오랜만에 작은 공간에 할머니랑 나만 남겨진 그 느낌이 그렇게 아늑하고 평화로울 수 없었다.
오랜만에 Melanie Safka의 <The Saddest Thing>을 듣는다.
And
the saddest thing
Under the sun above
Is to say goodbye
To the ones you love.
All the things that I have known
Became my life my very own
But before you know you say goodbye
Oh,
time, good time, goodbyeUnder the sun above
Is to say goodbye
To the ones you love.
All the things that I have known
Became my life my very own
But before you know you say goodbye
It's time to cry.
But I will not weep nor make a scene
Just say "thank you,
life for having been."
And the hardest thing
Under the sun above
Is to say goodbye
To the ones you love.
No I will not weep nor make a scene
I'm gonna say "thank you,
life for having been."
And the loudest cry
Under the sun above
Is to silent goodbye
From the ones you love.
I'm gonna say "thank you,
life for having been."
And the loudest cry
Under the sun above
Is to silent goodbye
From the ones you love.
오늘은
많이 울은 날이다.
나는
늘 할머니를 보낸 내 마음만 아프다고 생각했는데,
이
노랫말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놔두고 먼저 떠나셔야 했던 할머니의 마음은 나보다 훨씬 많이 아프셨겠지...
그래서
더 많이 눈물이 난다.
할머니의
그 마음이 느껴져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