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December 18, 2014

할머니 83세 생신



사랑하는 할머니께,

저예요. 할머니가 사랑하는 강아지. 목소리 크고, 덜렁거리고, 걸핏하면 넘어지고, 잘 웃고, 잘 우는 할머니 손녀. 하지만 이 세상 누구보다 할머니를 사랑하는 할머니 새끼.

할머니 올봄은 유난히 더디네요. 매서운 바람이 아직도 몰아치는 3월. 어쩌면 저는 이 추위를 즐기고 있는지도 몰라요. 봄소식과 함께 제일 먼저 할머니 생신이 찾아오고, 또 그렇게 몇 달이 지나 봄을 떠나보낼 무렵 어김없이 할머니 기일이 돌아오겠죠.

할머니께서 떠나신 이후로 저에게 봄은 더 이상 설렘으로 다가오지 않아요.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역시 달력에 빨간색으로 적힌 공휴일에 지나지 않을 뿐, 어떤 큰 상징성을 띠지 않게 되었죠. 그렇다고 제가 365일을 무의미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니 염려 마세요. 오히려 할머니께서 떠나신 이후 저는 365일을 골고루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거든요. 할머니 덕분에 저는 매 순간순간의 소중함과 그 절대적 의미를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게 되었어요.

지난 삼 년간 매일 밤 할머니께 편지를 쓰면서 둘이 이야기 나누듯 그날 하루 있었던 일들을 말씀드리고, 할머니한데 꿈에 나와달라고 조르고 하는 저의 일과가 제 삶에 얼마나 큰 용기와 힘이 되었는지 모르시죠?  제가 할머니와 추억을 이야기하고, 그 추억을 먹고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 수 있는 것 또한 모두 할머니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잖아요. 그러니 제가 할머니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는 건 당연한 일이죠. 바로 오늘이 할머니와 저의 인연의 시작이었으니까...

할머니 83세 생신 축하드려요. 우리 할머니는 너무 고우셔서 그 연세로 보이지도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숫자상으로는 할머니께서 오늘 여든세 살이 되시는 거예요.

할머니.

너무 보고 싶어요. 그 많은 책을 읽고, 그 많은 생각을 하고, 그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보고 싶은 마음 하나 다스리는 법을 못 익힌 걸 보면, 아무래도 이 부분이 저의 취약점인가 봐요. 하지만 제가 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런 제가 할머니를 이만큼 많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요? 반드시 고쳐야 하는 나쁜 버릇이나 그런 거 아니잖아요? 그죠? 그래서 전 그냥 이렇게 평생 할머니 그리워하면서 살려고요.

저는 아직도 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간 사람은 잊으라고 하는지, 잊어야 산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할머니, 전 할머니 안 잊고 이렇게 오래오래 할머니 생신 다 챙겨드리고, 할머니 생각 계속하면서 살다가 할머니 만날 거예요. 세상에 꼭 슬픔을 이기는 방법이 한 가지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이렇게 할머니를 추억하면서 사는 것이 제게는 가장 큰 치유거든요. 그러니 할머니 제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히 저의 그리움 모두 받아주세요. 할머니께서는 제 마음 이해해 주시리라 믿어요. 우리는 그런 사이니까... 그지 할머니?

나의 사랑 할머니.

어젯밤에 랄라가 읽던 동화책을 함께 읽었는데 이런 대목이 있었어요. 제가 서투르나마 할머니께서 이해하시도록 한글로 번역해 볼게요. 이 동화에 보면 <고요의 계곡>이라는 곳이 나오는데요. 그곳에서 모든 소리의 책임을 맡고 있는 노파가 주인공 마일로에게 이런 아름다운 말씀을 해주세요.

“얘야, 정적에도 수많은 소리만큼 각각 다른 고요함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니? 하지만 너무 슬프게도 이제는 아무도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지. 얘야, 너는 동이 트기 전에 들려오는 그 장엄한 침묵을 들은 적이 있니? 아니면 폭풍이 지나고 난 뒤에 들려오는 잔잔하고 평화로운 고요함을? 혹은 누군가 질문을 던졌을 때 답 못하는 너의 주위를 맴도는 적막감을? 아니면 어느 깊은 밤 시골길에서 들려오는 쉿~! 하는 속삭임을? 또는 방을 메운 관중 모두가 한 사람의 연설을 듣기 위해 기대에 부풀어 숨죽이고 있는 정적을? 하지만 그중 가장 아름다운 건... 문을 닫고 집에 들어섰을 때, 이 공간에서만큼은 난 철저히 혼자라고 느낄 때의 그 고요함이지. 얘야. 너도 알다시피 이 모든 無聲은 각기 다른 색을 띠고 있지만, 어느 하나 빠짐없이 아름답단다. 네가 조심히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 준다면 말이야.”

할머니.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가슴에 우리 한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할머니 돌아가시고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 줄 아세요? 바로 아무도 없는 닫힌 공간에 들어가 문을 닫고 혼자 짐승처럼 울고 싶었어요. 미쳐도 좋으니 그렇게 나만의 공간에서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애도하고 싶었어요.

밀려드는 조문객들... 초재로 시작돼서 매주 치러지는 49재... 천도재...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그들은 나를 위로하고, 나는 그들에게 인사를 해야 하고, 큰 슬픔에 빠져있는 가족과 친척을 챙겨야 하고, 어린 랄라 앞에서는 엄마여야 하고... 이 모든 것들이 저를 얼마나 힘들고 아프게 했는지 몰라요.

제 오래된 친구 중에 너무 슬프지만 사산을 경험한 친구가 있어요. 어느 날 그 친구가 저한데 이렇게 말했죠. “수미야. 내가 아이를 잃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사람들이 와서 많은 위로를 해주더라.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들이지... ‘산모라도 건강하니 불행 중 다행이다. 어서 슬픔을 딛고 일어서라. 너는 아직 젊으니 또 임신을 할 수 있다. 희망을 잃지 말아라.’ 그런데 수미야. 그런 말들이 나를 더욱 비참하고 화나게 하더라. 내가 진정 그들로부터 바란 건 어쩌면 그냥 진심 어린 침묵이었을지 몰라.”

저는 수화기를 통해 전해오는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며 심장이 파르르 떨렸어요. 별처럼 고운 내 친구가 느꼈을 그 슬픔과 절망을 제가 어떻게 감히 한 마디의 말로 위로하고 이해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할머니. 비단 슬픔과 아픔뿐이겠어요? 사랑도 그리움도 기쁨도 행복도 때로는 백 마디의 말보다 순간의 침묵이 그 진리를 대변해주는 경우가 이외로 많잖아요.

봄이 찾아와 고요한 바람결에 꽃향기라도 실려 오는 날이면 저는 할머니를 느껴요. 그래서 잠시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핑 돌지만, 그래도 그렇게 추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할머니가 계셔서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

오늘은 우리 할머니가 꽃잎처럼 이 땅에 사뿐히 내려오신 날. 할머니 83세 생신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태어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 사랑해요.

2013년 3월 16일 (음력 2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