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anuary 12, 2015

적응장애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가장 많이 내린 진단은 다름 아닌 “적응장애”이다. 갑자기 적응장애에 대한 생각이 스치고 지난 것은 며칠 전 고추 모종을 옮겨 심으면서부터이다.
 
올봄 텃밭에 여러 가지 새로운 채소들을 심으면서, 고추 모종들도 사다 심었었는데, 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여섯 개의 고추 모종들만 따로 떨어져 심게 되었다. 본래 나의 성격 데로 라면 당연히 고추 가족들을 한 쪽에 나란히 심어 주었을 테지만, 새로 사온 고추 모종을 위해 유난히 길었던 지난겨울을 씩씩하게 잘 견뎌준 파들을 뽑아 버릴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경우가 될 것이며, 파들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억울한 강제퇴거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남은 여섯 개의 고추 모종들은 파가 심어진 곳을 건너 띄어 심어 주었더랬다.
 
그렇게 봄이 무르익고, 여름을 맞이할 무렵, 고추는 무럭무럭 잘 자랐지만, 파들은 점점 야위어만 갔다. 그리고 얼마 전 남아있던 모든 파를 뿌리 채 채 뽑아 김치를 담그는데 사용했다. 텃밭을 오고 가며 이제야 고추 모종을 가족들 곁으로 옮겨 심어 줄 수 있겠구나 싶었지만, 막상 옮길 생각을 하니 혹시라도 잘 자라고 있는 고추들을 옮겨 심어 몸살을 앓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 자꾸만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 전, 텃밭을 손질하다 보니 그간 고추들이 어찌나 늠름하게 잘 자라주었던지, 지금이라면 옮겨 심어도 괜찮을 듯싶어 용기를 내어 가족들 옆에 나란히 심어 주었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그날부터 새롭게 옮겨 심은 고추들은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몇 달 간 뿌리를 내리고 자란 곳을 갑자기 떠나게 돼서 그런가 보다는 생각에, 이 모든 것이 내 이기적인 처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순조로운 적응을 위해 충분한 시간과 이해와 배려를 필요로 하는 것은 비단 고추들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람들도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수많은 적응의 도전을 받으며 성장한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나아가 대학교의 문을 두드리게 되는 순간까지 아이들은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복잡한 학교 규칙과 부모님의 높은 기대 속에서, 스스로를 자신이 처해진 환경 속에 적응시키고자 노력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면서 성장한다. 더군다나 내면적, 육체적으로 가장 눈부신 성장을 맞이하는 청소년기에는 스스로도 그 변화의 속도에 당혹스러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변수들이 아이들의 주의에 새롭게 생겨났다 영원히 머물기도 하고 이내 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학교생활에 적응했을 무렵 전학을 가게 된다거나, 집안 환경이 경제적으로 갑자기 어려워진다거나, 부모님께서 이혼이나 별거를 시작하신다거나, 선생님 혹은 친구들과 소통의 문제가 생긴다거나, 성적 정체성 혼란을 경험한다거나, 이유를 알 수없는 무기력증과 우울 증세에 시달리게 될 경우, 우리 아이들이 경험해야 하는 혼란과 방황의 시기는 당연히 길고 깊을 수밖에 없다.

모든 아이들이 비록 더디지만 그 힘든 적응기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해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인생의 열매를 맺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면 다행이지만, 주변의 대다수의 아이들이 크고 작은 적응장애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어젯밤 한차례 큰 비가 내렸다. 오랜만에 듣는 굵은 빗소리가 한국의 장마를 연상케 해서 귀는 즐거웠지만, 새로 옮겨 심은 고추들 걱정에 꿈에도 텃밭을 서성였던 것 같다.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바로 텃밭으로 나가보았더니 염려했던 데로 새로 옮겨 심은 고추들이 축 늘어져 있었다. 해가 뜨고 햇볕을 받으면 좀 어떨까 하고 낮에 들여다보았더니, 그때까지도 고추들은 홀쭉이가 되어 서있었다.
 
가만히 잘 자라고 있는 고추들을, 내 맘대로 가족 옆에 두니 어쩌니 하면서 옮겨 심은 탓에 애꿎은 고추들만 적응장애로 고생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나로 하여금 아파한 이들, 나의 개인적인 판단의 결과물로 인해 크고 작은 적응장애를 앓아야 했던 내 주위의 모든 생명체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은 반성의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신비로운 건, 나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고추들에게 전해졌는지, 늦은 오후부터는 텃밭의 고추들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새로운 발견이다.
 
오늘도 이렇게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