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6, 2015

Dr. H



천문학 강의를 들으러 Planetarium에 앉아있으면, 음악과 함께 서서히 실내등이 꺼지고 둥그런 천정에서 반짝반짝 별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교수님께서는 빨간 레이저 펜을 한 손에 들고 오늘 밤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별자리와 행성들을 하나하나씩 자상하게 알려 주셨다.

희끗희끗 싸락눈이 내려앉은 듯한 Dr. H의 머리카락은 그분의 연세를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지만, 막상 수업이 시작되면 우리는 천진난만한 소년을 따라 별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공처럼 통통 튀기던 교수님의 재치와 우주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 수업시간 내내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져왔기에 교수님의 천문학 수업은 늘 인기 만점이었다.
 
특히 교수님께서는 천문학을 수강하는 학생들에 한해서 친구와 함께 Planetarium에서 청강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는 센스까지 갖고 계셨기에, Planetarium은 늘 학생들로 붐볐다. 새내기 학생들은 교수님의 소박하고 털털한 모습이 주는 이미지를 과신한 나머지, 그분의 시험 제출 유형 또한 아주 쉽고 간단할 거로 예측했고, 다른 과목에 비해 크게 성적을 걱정하지도, 시험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험 당일, 유유자적하던 학생들의 표정은 시험지를 받은 순간부터 굳어지기 시작했다. 교수님께서 마치 이날을 기다려 오셨다는 듯이, 몹시 어렵고 난해한 문제만을 골라 제출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들은 자신들의 예상을 멋지게 빗나간 이 상황을 당혹스러워했고, 심지어 어떤 친구들은 교수님에게 배신감마저 느낀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난 그런 예상 밖의 반전마저도 매우 좋았다.

시험문제를 찬찬히 읽어 내려가고 있노라면, 교수님께서 얼마나 성심성의껏 이 문제들을 만드셨는지, 그리고 우리가 이 수업을 통해 무엇을 가슴에 새기기를 바라시는지, 앞으로 어떤 내용에 더욱 집중해서 공부했으면 하는 마음이신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낸 문제들은 단지 어려운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학생들을 향한 독려와 학습의 방향성을 동시에 제시해 주었기에, 결과적으로는 천문학을 처음 접하는 많은 학생에게 마중물과도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첫 시험의 폭탄 세례를 맞은 이후, 대부분 학생은 그저 별이나 보고, 음악이나 듣다 가자는 수업태도에서, 사뭇 진지한 모습을 띠기 시작했고, 기말고사를 치를 무렵에는 누구도 시험지를 받고 황당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나는 Dr. H와 같이 좋은 스승을 우리 주위에서 자주 만나 뵙기를 소망한다. 자상하고 온화한 인품이 편안한 배움의 환경을 만들고, 해박한 지식과 뜨거운 열정이 함께 조화를 이룰 때, 배우는 학생들은 진정한 학습의 묘미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교수님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그분께서 인기몰이 위주의 재미있고 쉬운 강의가 아닌,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배움의 중요한 가치를 학생들이 충분히 깨우칠 수 있도록 애정을 가지고 매 수업을 진행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한 인생을 통해 우리 가슴속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스승은 몇 분이나 계실까?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처럼 떨어져 내리던 별들을 추억하며, 잠시 지나온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