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뉴스를 접한 뒤, 며칠간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암울한 시간이 흘러갔다. 죽음이란 그 형태가 어찌하든 간에 슬픔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이번 사고처럼 그 원인이 인재에서 비롯된 경우, 특히 희생자 대다수가 어린 학생들일 경우에는 애통한 마음을 거둘 길이 없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보니, 배 안에 갇힌 채 어둡고 차가운 바닷속에서 느꼈을 아이들의 공포와 처절했을 절규가 가슴에 메아리쳐 견디기 몹시 힘들었다. 바라만 보아도 예쁜 아이를 순식간에 잃게 된 부모님들의 심정은 이미 스스로 죽음을 경험한 바와 다름없을 것이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보니, 배 안에 갇힌 채 어둡고 차가운 바닷속에서 느꼈을 아이들의 공포와 처절했을 절규가 가슴에 메아리쳐 견디기 몹시 힘들었다. 바라만 보아도 예쁜 아이를 순식간에 잃게 된 부모님들의 심정은 이미 스스로 죽음을 경험한 바와 다름없을 것이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나서 내가 그/그녀에게 못 해준 아주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들에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한다. 따뜻한 밥을 못 지어줬다거나, 바짓단 수선을 해주지 못한 채 보냈다거나, 아이의 어리광을 나무랐다거나, 퉁명한 말투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거나 등등.
마찬가지로 우리는 떠나간 사람의 업적이나 명성이 아닌, 그/그녀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 독특한 습관, 웃음, 향기, 말버릇, 좋아하던 책이나 노래를 그리워한다. 그러고 보면 이 한순간 한순간이 어찌 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러기에 더욱 가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지난주 내내 마음이 어둡고 무거웠지만, 잠시나마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대부분을 정원에서 보내기로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겼다. 수국, 양귀비, 옥잠화, 아이리스, 등심붓꽃, 멀구슬나무들에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주고, 이미 꽃을 떨군 나무들의 가지치기를 하고, 허브들과 채소들이 심어진 텃밭을 가꾸면서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다.
슬픔 속에도 잔잔한 행복들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부와 선박업체의 뉴스는 숨 막히게 하지만,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한마음으로 애도하는 모습, 계속 이어지는 아름다운 선행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안도의 숨이 지어진다.
이제 5월도 곧 손 내밀면 닿을 곳에 있다. 4년 전 할머니께서 눈 감으신 그 날, 나는 그때와 같은 절절한 마음으로 할머니를 추억하며 위패가 모셔진 길상사를 찾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다시 또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감출 길이 없다. 시간은 직선과 원의 두 형태로 흐른다는 표현처럼, 나도 그 속에 머물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