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September 9, 2015
自殺
9월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World Suicide Prevention Day는 전 세계에 생명의 소중함과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날이다.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와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Suicide Prevention (IASP)에 의해 2003년부터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5년 전 여름, 할머니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나는 한국에 머물고 있었고, 내 몸과 정신을 연결 짓던 감정의 더듬이는 모두 그 기능을 상실한 듯했다. 그날 밤 깊은 정적을 뚫고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 저편으로 전해 들은 어느 40대 후반 남성의 자살 소식.
성실하고 사교성 좋은 형으로 친인척들 사이에서 구심점 역할을 해왔던 그는 IMF와 함께 직장을 잃었고, 그 뒤로 십여 년을 무직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그에게는 홀어머니와 능력 있는 직장인 아내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매가 있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실직과 오랜 시간 계속된 취업난을 겪으며, 그의 성격도 생활습관도 사회성도 차츰 변해갔다고 한다.
그의 웃음기 넘치던 얼굴은 무표정으로 변했고, 주위 사람들에게 유쾌함을 주던 유머감각은 깊은 수치심으로 변했고, 단란하던 식사시간은 혼자 술을 들고 산을 오르는 것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의 가족들도 변했다. 아이들 입에서 "아빠"라는 호칭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아내 입에서 "여보"라는 호칭도 사라졌다. 그는 그렇게 십여 년이라는 세월을, 가족들 등 뒤에서 숨 쉬는 그림자처럼 짐스럽게 살았다고 한다.
그는 오히려 밝아오는 아침보다 저물어가는 저녁을 더욱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다음 날 그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노모는 피를 토하듯 아들의 이름을 울부짖고 있었다. 입관에 참석하러 그의 가족들이 잠시 떠나고, 조문객들만 장례식장에 남았다. 영정 속의 그는 내가 전해 들은 대로 마음 좋은 이웃 아저씨처럼 온화한 표정으로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복도 저편에서부터 노모의 오열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가……. 네 바짓단이 어쩌다 이렇게 다 헤진 채로 있단 말이니. 엄마가 미안하다. 엄마가 너 가는 길, 제일 예쁘고 좋은 새 바지 마련해서 입혀주마. 아가. 미안하다. 내 새끼 마지막 길에 헌 옷 훌훌 벗어 던지고, 꼬까옷 입고 가야 한다."
나는 그때 생전 처음 자식을 앞서 보낸 어머니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눈물로 눈이 짓무르다"라는 표현이 어떤 것인지,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감히 그의 홀어머니를 붙잡고, 나도 얼마 전 할머니를 잃었다는 소리를 입 밖에 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노환으로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내 모습이 허영처럼 느껴져 송구스러웠다.
우리 모두 지금보다 조금 더 서로에게 다가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 가족은 혈연, 거주, 운명, 애정, 가계의 공동체이며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라고 한다. 실직, 생활고, 질병, 사고, 장애와도 같은 삶의 위기는 어느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찾아 올 수 있다. 자살과 죽음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함께 나누는 공감적 이해가 절실하다.
내 자식이 소중하듯 남의 자식도 귀중한 존재이고, 내가 귀한 딸이면 나의 남편도 귀한 아들이다. 연세 드신 우리 부모님 안쓰러울 때, 똑같이 연세 드시고 계시는 시부모님도 안쓰러운 것이다. 편협적인 사고와 오만은 결국 내 영혼을 오염시키고, 나아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보듬어주는 마음의 실천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40초에 한 명씩 존귀한 생명이 스스로의 삶을 마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