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랄라에게
올가을에는 예년보다 비가 자주 내리는 것 같구나. 엄마는 비 오는 날이면 랄라의 분홍색 바탕에 빨간 무당벌레가 그려진 우비가 떠올라. 캐나다에서 살 때 어느 아동복 가게에서 그 우비를 보고는 첫눈에 반해서 두 살 난 랄라에게는 품이 커서 안 맞을 것을 알면서도 훗날을 기약하며 사두었던 우비였어. 그런데 세 살 무렵 그 옷을 우리 랄라한데 보여줬더니 너무너무 좋아하는 거야.
결국, 소매는 두 번 접기로 하고, 헐렁헐렁한 몸통은 철 단추를 끼워서 입히기로 했지. 그리고 그 무당벌레 우비를 입고 랄라는 인생의 첫 호박농장 나들이를 갔단다.
그 뒤로도 랄라는 그 옷을 아마 5년 정도 더 입었던 것 같아. 엄마가 2009년도 3월 24일 적은 일기에도 랄라가 그 우비를 입고 첨벙첨벙 빗물과 장난을 치는 사진이 있어. 그리고 이렇게 적어놓았어. “비 오는 날이면 꼭 한 번은 빗물 속에서 뛰어놀아야 하는 우리 랄라. 이다음에 어른이 돼도 지금 같은 마음으로 비 오는 날을 즐길 수 있는 감성과 여유를 잊지 않기를… 사랑해 랄라야.”
이제 열세 살을 맞이한 랄라는 우비 대신 검은색 바탕에 하얀 물방울무늬가 있는 접이 우산을 쓰고 빗속을 걸어가는구나. 지난 일 년 사이에 몸도 마음도 훌쩍 자란 우리 랄라의 소중한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늘어난 학업으로 매일 11시가 넘어야 잠을 이루고, 한 달에 몇 번씩은 자정을 넘기고도 졸린 눈을 비비며 숙제를 하거나 시험공부를 하는 랄라의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대견한 마음도 물론 들지만, 몹시 안타깝고 애처롭단다.
엄마도 오래전에는 랄라처럼 학생의 입장이었고,
열심히 공부했고,
시험 기간에 밤샘은 당연한 일과였었어.
그런데 막상 엄마가 되어보니 눈앞에 익숙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데 바라보는 관점은 아주 새로워졌음을 깨닫는다.
랄라야.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마음 깊이 감사한다. 랄라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친구들과 재잘거리는 소리, 호탕한 웃음소리, 야옹이들을 부르는 소리, 아주 가끔이지만, 엄마를 찾는 소리가 어느 하나 빠짐없이 모두 고맙고 소중한 이유는 그것들이야말로 생기있는 랄라의 삶의 증표이기 때문이란다. 누군가가 말했어. “만약 자신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더는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게 된다면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삶을 재조명 해보아야 한다”고 말이야. 다행히도 우리 랄라는 지금 잘살고 있는 것 같구나. 그래서 엄마는 랄라를 바라보면 뿌듯하고 행복해. 고마워 랄라야.
며칠 전에 랄라가 “자퇴”에 대한 자기 뜻을 글로 옮기느냐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지?
랄라가 자퇴를 존중하는 설득력 있는 세 가지의 이유를 들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엄마에게 우리 랄라의 깊은 사유와 따뜻한 마음을 살짝 엿볼 기회가 되었단다. 랄라가 이렇게 적어놓았더라고.
“모든 학생이 즐겁고 의미 있는 학교생활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에서는 매년 4,400명의 청소년이 학교 폭력으로 자살한다. 인간은 본인의 안전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누구든지 가혹한 환경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자유가 있다.” 그 날 엄마가 랄라와 함께 곁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이런 귀중한 생각들을 들여다볼 기회를 잃었겠지? 엄마가 랄라를 진심으로 칭찬해 주고 싶은 점이야말로 바로 이런 랄라의 마음가짐이란다.
엄마는 그 날 숙제를 하는 랄라를 지켜보다 새벽에 잠이 들었지만, 정신이 아주 맑아지는 경험을 했어. 그리고 랄라가 엄마의 딸이어서 참 자랑스러웠어.
우리 랄라에게 인(仁)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발현되고 있다는 것.
이보다 엄마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소식은 없을 것 같아. 인간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엄마가 랄라에게 이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야기해주고 싶은 삶의 핵심이란다. 앞으로도 랄라가 귀중한 인(仁)의 씨앗을 마음의 밭에 뿌려 애정으로 보살피고 마침내 아름다운 꽃을 피워 그 향기가 멀리멀리 퍼져나가길 엄마는 소망한다.
눈부시게 찬란한 우리 랄라의 열세 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2015. 10. 30.
행복한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