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February 26, 2016

마법의 장롱



나는 오랫동안 외국에서 학교에 다녔지만 여름방학은 한국에서 보냈다. 내가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한숨 돌리고 있을 무렵, 할머니께서는 변함없이 나를 장롱 앞으로 부르셨다. 장롱문을 열면 하단에 서랍장이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서랍을 여실 때면 아주 비밀스러운 표정을 지으시곤 하셨다

나는 같은 경험을 매년 여름마다 해서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순간이 다가오면 심장이 콩닥콩닥 뛰면서, 눈동자는 커지고, 이번에는 어떤 물건이 할머니의 보물 상자 안에서 나올까 하는 설렘에 온몸에서 열이 났더랬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할머니께서 내가 없던 동안 정성껏 모아두신 외제 사탕이나, 향기 좋은 비누나, 예쁜 머리핀이나,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으셨다는 화사한 손수건이나, 곱게 말려 놓으신 행운의 크로버 같은 물건들을 즐겼다기보다, 할머니께서 유독 나만을 위해 모든 것들을 은밀히 보관해 두신 마음, 그래서 나는 특별하다는 우월감, 할머니의 나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다는 믿음, 그런 감정들을 더욱 즐겼던 것임이 분명하다

장롱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나의 온몸이 뜨거워진 이유도 우리 할머니의 나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아름다운 의식 자체에 대한 벅찬 감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누 향이 사탕을 먹으며 할머니의 사랑을 먹은 것이다.

세상 어느 고급 백화점에서도 없는 우주에 하나뿐인 사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