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December 18, 2014

백일기도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미국으로 돌아온 날부터 시작한 백일기도는 오늘 새벽 기도로 마무리되었다. 파도처럼 내 몸을 휘감아치는 슬픔과 그리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 귀중한 백일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기도는 영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자를 위한 것이라고... 책에서 읽었을 때는 그냥 그럴듯하게만 들리던 문구가, 실제로 내가 경험을 하고 보니 그 깊은 뜻을 피부로 느끼고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맞다. 기도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구실 삼아 남아있는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한 의식이었다.
 
백일동안 매일 새벽 같은 시간에 일어나 할머니의 영정을 마주하고 앉아 울기도 많이 울고, 나를 두고 갑작스레 가버린 할머니께 무정하다며 원망도 많이 했다. 내 친구 말처럼 "그럼 할머니께서 널 두고 가셔야지 데리고 가셨어야 옳으냐?"라고 받아치면 할 말이 없지만, 난 할머니께서 나를 두고 이 세상을 떠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할머니께서 연세를 드시면서 수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엄마랑 아빠가 할머니를 모실 좋은 자리를 알아보러 다니실 때도, 나는 그 모든 것이 우리 할머니의 만수무강을 위한 방책일 거라고 믿었다. 설사 어느 날 갑자기 저승사자가 할머니를 모시러 온다 해도 염라대왕을 설득시킬 자신이 있었다. 왜냐면 그분들도 눈이 있고 마음이 있다면 나와 할머니의 애틋한 정에 동요되어 1년 2년 보너스처럼 할머니의 명줄을 늘려주실 것이 분명하다고 믿었으니까...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인생 덧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를 잃은 상실감과 함께 나의 오랜 믿음이 무너져 내린 절망감이 거세게 밀려왔다. 혹시라도 나의 효심이 나의 사랑이 충분하지 못해 저승사자의 마음을 돌리지 못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미련과 자책이 잠자리에 누워도 지친 영혼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래서 더 괴로웠지 싶다. 마음이 간절하면 그 뜻이 꼭 하늘에도 닿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할머니께서는 나를 두고 멀리멀리 떠나버리셨고, 그것이 내가 마주한 현실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산사람은 또 살기 마련이다." "이제 그만 할머니를 보내 드려야 한다." 말은 좋다. 그리고 그 말이 맞는다는 것도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난 할머니를 영원히 보내드릴 수 없을 것 같다. 할머니의 육체는 지금 내 곁에 없으시지만, 할머니의 영혼은 분명 나와 함께 하실 것이다. 매일매일 함께 계실 수 없어도, 꿈에 나와 얼굴도 보여주시고, 새가 되어 우리 집에 쉬러 오시기도 하고, 때로는 따스한 햇살로 나를 어루만져 주시고, 어느 여름날 시원한 바람이 되어 내 곁을 맴도실 것이다. 할머니를 여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어느 스님께서 너무 큰 집착은 버리라고 하셨다. 이제 마음은 한결 평화롭기에 집착은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할머니의 대한 애착은 도저히 버릴 수 없다. 솔직히 버린다고 해서 버려지는 것이 사랑은 아니지 않은가...

할머니께서 마지막으로 내게 남기신 말씀. "할미라면 꺼뻑하는자식 같은 장손아. 인생이란 왔다가는 것이 당연지사 나이가 많으니까 먼저 갈 뿐이다." 우리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쩜 그렇게 의연하게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실 수 있으셨을까? 할머니의 가르침은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훌륭한 할머니의 가르침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어 나름 노력하며 살아온 세월이 삼십 칠 년이다. 앞으로 살아온 인생만큼 더 산다고 해도, 나는 결코 할머니의 곧고 맑은 심성을 따라갈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난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훗 날 우리 할머니 품에 안기면 칭찬을 듣고 싶다. "수미야. 그래 열심히 착하게 잘 살았구나. 우리 강아지 새끼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