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10, 2014
수선화에게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 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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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라야,
오늘 아침은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어. 우리 집 한편에 피어있는 아이리스의 향기가 정말 그윽하고 좋지? 랄라도 맡아보고는 향기롭다고 좋아했던 거 기억하지? 엄마가 어릴 적에 우리 집 마당에 넝쿨 나무 밑으로 새장이 달려 있었는데, 노란 새 두 마리가 정말 예뻤어. 아침에 일어나면 왕 할머니께서 엄마 손을 잡고 새 구경을 시켜주시면서, 새 깃털도 만져주게 해주시고, 모이도 주시고, 물도 갈아주시고 그러셨었어.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일과가, 지금은 너무도 감사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단다.
이 시는 정호승 (1950.1.3 - ) 시인의 작품이야. 엄마는 애잔한 슬픔이 서려있는 아름다운 이 詩를 좋아해.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이 詩가 지닌 진실성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단다. 랄라야. 엄마가 이전에 이야기했듯이, 엄마는 <어린 왕자>를 중학교 때 처음 읽었는데, 그때는 무슨 소리인지 지루하기만 하고 그냥 세계명작이라니까 읽은 게 다였거든. 그런데 20대에 읽은 <어린 왕자>와 30대에 읽은 <어린 왕자>는 또 다른 느낌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어. <수선화에게>도 그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지.
처음에 이 詩를 만났을 때, 엄마는 아련한 비애를 마음에 그리며 읽어 보았던 게 전부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엄마에게도 크고 작은 슬픔이 스쳐 지나간 뒤에 읽은 이 작품은 아프더라고. 많이 아팠지... 그런데 랄라야. 엄마가 시인이라면 이 詩의 첫머리를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서 "울어라/ 맘껏/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바꾸었을 거야.
랄라야. 슬프고 아플 때 우는 건 나쁜 게 아니야. 반드시 눈물을 참을 필요는 없단다. 명심하렴. 엄마가 늘 말했지? 울고 싶을 때는 우는 거라고... 그래 랄라야. 지금 내리는 봄비처럼 싱그러운 너는 아직 정호승 시인의 이 작품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엄마는 감사한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 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눈이 오면 눈길을, 비가 오면 빗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매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는 징표와도 같은 거란다. 그리고 눈과 비를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의 가슴은 아직도 말랑말랑한 마시멜로처럼 부드럽다는 증거이기도 해.
랄라야! 갈대숲의 도요새처럼 엄마가 늘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거 잊지 마. 그렇다고 너를 스토커처럼 따라다니거나 파수꾼이 되어 너를 지켜보겠다는 뜻이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말렴. 그냥 늘 엄마가 너의 곁에서 너를 응원하고 있다는 뜻과 비슷해. 이미 바람도 햇살도 그렇게 우리 곁에 머물고 있잖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