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
아침 햇살이
라일락 꽃잎을 흥건히 적시고 있다.
한 아이가 나비를 쫓는다.
나비는 잡히지 않고
나비를 쫓는 그 아이의 손이
하늘의 저 투명한 깊이를 헤집고 있다.
그대의 눈은 나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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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라야,
오늘 저녁 랄라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엄마 얼굴도 아빠 얼굴도 마주 보지 않고, 용건이 있으면 말을 하는 대신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 엄마 방에 들어올 때는 한 손으로 너의 두 눈을 가리고 들어오지.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랄라. 그런데 엄마는 그런 랄라가 귀여워.
랄라가 화가 난 이유는 우리 집 앞뜰의 배나무가 너무 크게 자라서 가지치기를 했는데, 랄라가 가장 좋아하던 가지마저 아빠가 베어버렸기 때문이야. 그지? 랄라가 그 나뭇가지를 밟고 올라가면 나무를 타기가 좋았는데, 랄라가 그 나뭇가지에 앉아서 친구들이 지나가면 손도 흔들어 주고, 벨라랑 같이 비 오는 날 우산도 씌어주고 했었잖아. 그지?
랄라의 속상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엄마는 왜 문득 김춘수 (1922.11.25 - 2004.11.29) 시인의 <뜰>이라는 작품이 마음에 와 닿았을까? 아마 그건 엄마는 이 작품에서 묘사된 나비를 쫓는 아이가 랄라처럼 느껴져서 그랬을 거야. 랄라는 나비도 잠자리도 다람쥐도 애벌레도 심지어 지렁이까지도 잘 쫓아 다니는 아이니까.
엄마는 그런 랄라의 모습을 아주 어릴 때부터 바라보았기 때문에, 랄라를 떠올리면 꽃과 나무와 바다와 하늘도 함께 눈앞에 펼쳐진단다. "나비를 쫓는 그 아이의 손이/ 하늘의 저 투명한 깊이를 헤집고 있다"는 느낌을 엄마도 랄라를 지켜보면서 받은 적이 몇 번 있어. 랄라와 자연이 하나가 되는 듯한 그런 느낌말이야.
랄라야. 미안해. 네가 아끼는 나뭇가지를 베어버려서…….
그런데 랄라야. 우리는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이웃과 함께 사는 것이라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집 나뭇가지가 옆집 잔디를 너무 많이 덮어서 Steve 아저씨네 잔디가 죽어가기 시작했고. 우리 집 앞을 산책하는 이웃분들의 머리에도 나뭇가지가 닿을 만큼 길게 늘어졌기 때문에 엄마랑 아빠는 나뭇가지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단다. 너에게 미리 말을 해주고 잘랐더라면, 랄라가 조금은 덜 서운했을까?
여하튼 미안해. 랄라 마음 많이 상하게 만들어서…….
나의 사랑스러운 나비를 쫓는 아가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