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10, 2014

슬픔과 평온


 
 
어제 아침 사촌동생과 전화통화를 했더랬다. 동생이 말했다. "언니 할머니는 새가 되셨어..." 우리는 할머니께서 어떤 새가 되셨을까 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동생은 "언니 우리 할머니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공작새가 되지 않았을까?" 듣고 보니 동생 말이 맞는 것 같다.

전화를 끊고 바로 인터넷 검색에서 공작새가 얼마나 날수 있는가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공작새가 된 할머니는 과연 미국에 있는 우리 집까지 날아오실 수 있는 걸까?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는 그만 할머니를 놓아드려..." 하지만 나는 매일 새벽 5시 할머니와 마주 앉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할머니를 만지고 싶다. 할머니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라드리고 싶다. 할머니랑 고스톱을 치고 싶다. 할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다. 할머니랑 말없이 안고 앉아있고 싶다. 할머니 고운 얼굴에 다시 한번 분칠도 해드리고 립스틱도 발라드리고 싶다. 할머니가 상추쌈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한번 보고 싶다. 할머니께서 "수미야~" 하고 불러주시면 "~" 하고 달려가고 싶다. 할머니께 거품 목욕을 시켜드리고 싶다. 할머니한데 내가 빚은 김치만두를 대접하고 싶다. 할머니랑 같이 정원을 가꾸고 싶다. 할머니와 기차를 타고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고 싶다.

할머니는 어떻게 나를 놔두고 가셨을까?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면서...

할머니도 내가 많이 보고 싶으실 텐데...

꿈에서라도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기다린 지가 63일째. 어젯밤 꿈에는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 할머니가 보내주신 선물만 딸아이 손에 들려 있었다예쁜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니 핑크빛 꽃다발 묶음, 내가 좋아하는 적색 체리 봉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거실 한편에는 할머니가 조용히 놓고 가신 기품 있는 앤티크 괘종시계 하나가 눈에 띄었다. 혹시 할머니의 뒷모습이라도 있을까 하고 현관문을 열고 살폈지만, 칠흑 같은 어둠만이 내려앉았다.

너무나 슬프지만 잠시 마음에도 평온이 깃들 때가 있다. 할머니의 영혼이 나와 함께 한다고 느껴질 때가 그렇다. 할머니께서 어깨를 다독다독해주시며 "아가, 피곤하니 그만 잠들 거라" 하고 말씀해 주실 나는 30분이라도 아주 달콤한 휴식을 취하곤 한다.

어릴 적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유난히 많았던 나에게, 할머니께서는 마지막 가시는 , 나의 내면에 내재해있던 죽음에 대한 무서움과 두려움 또한 함께 거두어 가셨다. 이제 나는 이상 죽음을 떠올릴 정체 모를 블랙 홀로 빠져들지 않는다. 나에게 죽음은 꿈과도 같다. 할머니께서 그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한 죽음도 할머니와 나를 갈라놓을 수는 없다. 우리의 사랑은 시공간을 뛰어넘고, 생사를 초월하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많이 슬프기는 하되 절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