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2, 2015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내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들로부터 희망과 행복을 선물 받기 때문이다.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우리 어른들이 얼마나 편협적 사고와 옹졸함으로 똘똘 뭉쳐있는지에 대해 가슴 깊이 반성하게 된다.

최고의 속도와 효율성을 외치는 이 사회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연 가족이나, 친구 혹은 직장 동료가 범한 실수에 얼마나 관대하며 또 그들로 하여금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몇 번이나 주고 있을까? 그렇다면 나 자신에게는 관대한 우리일까? 움츠려드는 자신을 일으켜세워 다시 힘차게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는 스스로에게나마 허락하고 있을까?

아이들은 친구가 귀찮게 하거나, 정말 재미없는 농담을 하거나, 시험을 심하게 못 보거나, 황당한 헤어스타일을 고집하거나, 한동안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거나, 심지어는 오늘 처음 만난 친구라 해도 상대에 대한 이해와 관대함이 빛난다. 내가 만난 아이들의 대부분은 친구의 반복되는 실수나 잘못에 짜증을 내기 보다, 상대편 입장에서 생각하고 나아가 어른들이 그 친구에게 안 좋은 편견을 가지게 될까 마치 자신을 변호하듯 열성적으로 설득하려 했다.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한 설득이 아니라, 온전히 그 친구가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가에 대해, 그 친구의 실수가 그 친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기 위해, 혹은 그 친구는 비록 지금은 실패했으나 앞으로는 성공할 기회의 수가 훨씬 많을 것이라는 염원이 느껴지는 아이들의 설득은 언제 들어도 내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더욱 재미있는 건, 당장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 포장지가 잘 안 뜯어진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이지만, 친구가 천천히 신발 끈을 묶고 있어 놀이 시간이 지연되고 있을 때는 오히려 침착한 면을 보인다는 것이다. 아이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빨리 서두르라고 조급하게 보채는 경우를 나는 거의 본 적이 없다. 반면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허기를 잘 참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타인의 행동이나 습관 때문에 우리의 일정이 늦어지는 것에 아이들만큼 평정심을 가지고 대응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도 때로는 친구의 말이나 행동에 상처를 받지만, 그렇다고 단 한 번의 불협화음을 이유로 절교를 하지는 않는다. 반면 우리 어른들은 너무도 쉽게, "이제 끝이야!" "마지막이야!"라는 말을 상대에게 내뱉고, 등을 돌리고, 잊어버린다. 숨 막히는 경쟁 사회 속에서 기계의 한 부품처럼 정확히 우리 몫을 해내야지만 대우받고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는 한 번의 실수만으로 누군가를 "아웃!" 시키기도 하고 “아웃!”을 당하기도 한다. 이런 우리에게 두 번째의 기회, 세 번째의 기회는 정말 주어질 수 없는 걸까? 나아가 그 기회의 수를 남들과 함께 나눌 수는 없는 걸까?

우리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친구에게 끝없이 관대하고, 그/그녀의 실수에 비난보다 안타까움이 앞서던 시절이 분명 우리에게도 있었다. 어제는 친구에게 성난 얼굴로 등을 돌리고 헤어졌지만, 오늘은 다시 같은 친구에게 쌍쌍바를 나눠먹자고 선뜻 권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친구가 약속시간에 늦더라도 분명 무슨 여의치 못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친구의 안부를 먼저 걱정하던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때 우리 가슴속에 살고 있던 마음은 어느새 우리에게 심장이라는 핏덩어리만 남겨둔 채 멀리 가출해 버린 걸까?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서서히 우리와 닮은 꼴이 되어 가는 것이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행복으로 느껴지는 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