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9, 2015

기억의 습작



어제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언니와 전화통화를 했다. 언니는 유난히 심성이 착하고 마음이 너그러운 분이어서 캐나다에서 같이 지낼 때도 좋은 사이였지만, 언니가 그곳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고, 내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변함이 없기에 우리 둘 사이에는 늘 그리움의 강물이 흐른다. 언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득 우리는 누군가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생각에 잠겼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나를 기억하고 있는 모습, 인상 깊게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나의 모습이란 소소한 일상의 단편들이며, 내가 잠시 잊고 있던 가장 나다운 모습의 조각들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친구 어머님은 중학교 시절 내가 그 친구 집 화장실 문턱 앞에서 큰소리로 웃던 모습을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하신다고 한다. 어떤 친구는 나를 떠올리면 내가 사용하는 독특한 커피 필터가 떠오른다고 한다. 할머니께서는 나를 보면 아장아장 (뒤뚱뒤뚱) 걸어오던 어릴 적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하셨다.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한 언니는 나를 떠올리면 늘 언니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가슴속에 이야깃거리가 쌓이면 내 생각이 난다고 했다.

누군가를 만나고, 알아가고, 또 기억하고 기억된다는 것. 참 아름다운 일이며 특별한 여정이 아닌가 싶다. 그 사람의 개성, 나와 같은 점과 다른 점, 내가 좋아하는 면과 받아들이기 힘든 면, 하지만 우정과 신뢰가 쌓아가면서 그 사람의 의견이나 가치관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해하려는 노력이 쌓이고 나아가 나와 다름을 존중하게 되는 그 변화의 경험은 우리를 좀 더 조화로운 인간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주는 아주 소중한 여정임이 분명하다.

아주 오래전, 어느 책에선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가진 세 가지의 장점을 찾아보라는 조언을 읽은 뒤부터 나는 늘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의 장점을 찾는 버릇이 생겼다. 처음 만난 사람일 경우 상대의 내면적 장점을 운운할 만큼 잘 알지 못하므로, 나는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눈빛, 유머, 분위기, 말씨, 태도, 친절, 얼굴 표정 속에 담긴 장점 세 가지를 찾아내는 게임을 은밀히 즐기곤 한다.

긍정의 힘이 가져다주는 시너지 효과는 인간관계에서도 충분히 적용되지 않나 싶다. 상대를 마주하고 그/그녀의 아름다운 면, 닮고 싶은 면, 인상 깊은 면을 찾기 위해 마음의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다 보면 당연히 상대방도 내가 뿜어내는 긍정적 소통의 에너지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말도 결국은 사람을 대할 때 긍정적인 마인드로 친절하고 공손하게 대하자는 지혜가 담긴 선인들의 가르침이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기억될까 걱정하기에 앞서, 과연 나는 상대를 긍정적으로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해 먼저 자문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등 신랑감을 기대하기 전에, 나 또한 일등 신붓감인지를 성찰해 봐야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처럼, 좋은 친구를 곁에 두기 바란다면,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벗이 될 인품을 가지고 있는지 먼저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사유의 조각들이 모여 나 자신을 결이 곱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니, 결국 긍정의 힘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