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16, 2015
바탕의 미학
요즘 들어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새벽에 참선을 시작하기 위해 아래층에 내려와 향을 피울 때, 우리 집 거실 깊숙이 비추는 달빛을 품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낮에는 뜨거운 태양을 품고도 푸르기만 한 하늘을 또 한 번 올려다본다. 그리고 노을이 물들 무렵에는 화려함과 애잔함이 스며드는 하늘을 아주 오래 바라본다. 다시 달님이 얼굴을 내밀고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밤이 찾아오면 얼마 전에 새로 뿌려놓은 잔디씨들에게 물을 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릴 적부터 주로 주인공의 자리를 꿰차며 살아왔던 나에게 사람들의 중심이 된다는 것,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많은 분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히 여겨지던 시간들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도 나는 과분하리만큼 큰 사랑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올여름 랄라의 방을 새롭게 꾸며주면서 내가 얻은 소중한 깨달음은 바탕색의 아름다움이다. 똑같은 가구, 똑같은 사람, 똑같은 소품도 방의 벽을 무슨 색으로 칠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새로운 느낌과 에너지를 전달하는지 경이로울 정도로 깊이 느꼈기에, 난 그것을 '바탕의 미학'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나도 그런 편안하면서도 조화로운 공존의 삶을 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내가 남보다 눈에 띌 때 느끼는 일시적 우월감이나 자아의 충족감이 아닌, 내가 그들의 뒤에서 포근하게 그들을 감싸 안아 각자가 지닌 다양한 아름다움이 그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그들의 바탕색이 되어줄 수 있다면, 난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자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졌다.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바탕색은 하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 것도 아마 이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부모님이나 스승의 은혜를 하늘같다고 표현하는 우리 고유의 문화에 깊은 철학이 담겨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전에는 하늘같은 은혜라고 하면 하늘처럼 높은 것을 상징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하늘을 올려다보면 볼수록 하늘은 그 높이만 위대한 것이 아니라, 드넓은 포용력, 그리고 어떤 날씨나 시간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 지나가는 모든 만물의 바탕이 되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상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보다 더 부모님이나 스승의 은혜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정말 그렇지 아니한가. 진정 자식을 사랑하고 제자를 아끼는 분들이라면, 기꺼이 자식과 제자를 위해 몸소 그들에게 하늘같은 바탕이 되어주고자 하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식과 제자의 인품이 보다 아름답게 오랫동안 빛날 수 있도록, 그들의 인생의 바탕색이 되어주고자 흔쾌히 마음을 내실 것이다.
잠시 뒤로 물러서는 여유.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남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나 자신 혼자 모든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행복감을 선물해 준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 나이를 먹어가는 여정이 더욱 감사한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