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23, 2015

정수리의 울림



이제는 고인이 되신 박완서 작가의 수필 <내 식의 귀향>이라는 작품에 보면 "내 정수리를 지그시 눌러 줄 웃어른이 없다는 허전함 때문이었을까?"라는 구절이 있다. 몇 해 전 읽은 작품이었는데, 이 부분을 읽어 내려가다 왈칵 울음이 쏟아져 나왔던 기억이 내게는 지금도 생생하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서이기도 하고, 내 주위를 돌아보니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은 부모님뿐이라는 현실이 슬픔과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얼마의 시간이 흘러 같은 작품을 한 번 더 읽었는데, '난 할머니를 잃어서 슬프지만, 엄마는 엄마의 정수리를 지그시 눌러줄 단 하나뿐인 엄마를 잃으신 것이니 그 심정이 오죽하실까?' 하는 마음에 눈물이 났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분명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수미야. 엄마 가슴에 구멍이 난 것 같아. 숨을 쉬기가 힘들 때도 있어. 그냥 나의 심장을 생으로 누군가에게 내어준 느낌이야."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던가.

나는 어려서부터 대체로 유순하고 어른들 말씀을 잘 듣는 아이였다. 그래서 작은 일이라도 혼자서 결정하기 전에 할머니나 엄마께 상의 드리고, 그분들의 허락을 받는 과정을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받아들이며 살았다. 물론 십 대의 끝자락부터 나 홀로 해외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공부했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는 늘 전화기를 들었었다.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귀에 익은 음성들... 때로는 큰소리로 흥분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사정 조로 말씀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심각하게 고민하시느냐 숨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던 순간들이 모두 큰 힘이 되어, 지금껏 큰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건 아닐까.

며칠 전 랄라가 "엄마, 일요일에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같이 숙제해도 돼요?"라는 아주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나의 허락을 기다리며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의 입술만을 또렷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하렴." 아이는 어찌나 신이 났던지 소리를 지르고 친구와 더 깊은 수다 삼매에 빠지기 위해 전화기를 들고 어디로 휙~! 사라져버렸다. 그런 딸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또 눈물이 맺혔다. 아주 오랜 옛날, 나도 아주 단순하고 소소한 일들을 할머니나 엄마께 여쭤보고 허락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내 집에 내 친구를 초대한다고 그분들의 허락을 받는 일은 없어졌다. 지금은 허락이 아닌 일상을 보고하는 형식이 되어버린 나의 입장이 왠지 모르게 애잔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청소년기를 거치며 자유를 꿈꾼다. 대다수의 젊은이가 부모님이나 집안 어르신들의 울타리를 빨리 벗어나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독자적으로 미래를 계획하고, 사랑에 빠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영유해 가는 날이 시작되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나에게도 그런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불혹이라는 나이를 맞아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 보니, 그래도 집안에 내 정수리를 지그시 눌러줄 웃어른이 존재하신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으며 깊은 사랑이었는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웃어른들의 존재는 집안을 덮고 있는 지붕의 포용력으로, 비 내리는 날 우산의 아늑함으로, 한여름 나무 그늘의 넉넉함으로 늘 우리를 감싸주고 계셨다는 것을 너무도 늦게 깨닫는다. 딸아이도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서서히 나의 허락을 묻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그날이 다가옴이 서운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허전함을 언젠가 랄라도 경험할 것을 생각하니 어느새 마음 한편이 아려오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