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나무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엄마 나무가 너무 가까이 서 있으면 그 그늘에 가려 아기 나무는 쑥쑥 자라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작가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도 이와 같아서 아주 어릴 적에는 부모의 극진한 보살핌과 보호가 필요하지만, 적당한 시간이 흘러 아이의 성장이 시작되면 스스로 홀로서기를 준비할 수 있는 자율성과 독립성을 키워주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선물이라고 했다. 뭐든지 이론을 이해하는 것은 쉽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더 큰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나의 그늘을 거두어 아이가 보다 많은 햇살과 영양분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게 하고 싶은 마음은 모든 엄마의 가슴속에 있다. 하지만 막상 거친 비바람이 불고, 숨이 헉헉 막힐듯한 태양이 내리쬐는 날에 아이를 혼자 세워두고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심정 또한 모든 엄마들의 크나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모성의 딜레마를 완화시켜주는 고마운 요소들이 몇 개 있다면, 그건 내 아이에 대한 믿음이요, 내 아이에 대한 존중이요, 내 아이에 대한 열린 사랑일 것이다. 사랑하는 새를 새장에 가두어놓는 닫힌 사랑이 아닌, 오히려 닫힌 새장의 문을 활짝 열어 새가 자유롭게 날아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며 열린 사랑의 실천이 아닐까... 엄마인 나 역시 턱없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내가 온전히 랄라를 품고 보호할 수 있으리라는 자만이 없어진지는 이미 오래다. 랄라는 앞으로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내 곁을 떠나 서서히 자신만의 향기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랄라는 지금 한 그루의 아기 나무일지 모르나, 언젠가는 숲을 이루며 살아갈 것이다. 훗날 나는 그 숲을 멀리서 바라보는 역할을 맡게 되겠지... 하지만 그건 슬픈 일도, 서운한 일도 아닌 삶의 한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구태여 영원한 엄마 나무이고 싶은 집착 또한 없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소유하려 하는가. 끊임없이 취하고자 하는 욕심으로 인해 우리는 또 얼마나 깊게 집착하게 되는가... 말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외치면서도 결국 우리는 남을 구속하는 희열과 구속당하는 안락함을 쉽게 놓지 못하고 일생을 산다. 그리고 그렇게 한 삶을 마무리한다. 랄라의 홀로서기의 첫날, 난 그녀의 인생의 진정한 치어리더가 되어주리라는 다짐을 해본다. 용기 있는 엄마이고 싶다. 그래서 훗날 랄라 또한 의연한 관조자의 자세로 그녀의 아기 나무의 성장을 바라보고 응원해주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