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9, 2015

부글부글



며칠 전 5월임에도 불구하고 거실에 벽난로를 켜야 했던 날이 있었다. 따뜻한 옥수수차 생각이 나서 스토브에 주전자를 올려놓고는 이층으로 올라와 첼로 연습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시간이 바람처럼 지나가버렸다. 잠시 다른 곡을 연습하려고 악보를 찾는 사이에 아래층에서부터 올라오는 구수한 냄새를 맡고서야 아까 올려놓은 옥수수차가 생각났더랬다.

다다다 다다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 바로 스토브로 돌진! 일단 가스불을 끄고, 찻장에서 큰 머그컵 한 개를 꺼내 아직도 주전자 안에서 펄펄 끓고 있는 옥수수차를 컵에 따르려다 뜨거운 물이 물거품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순간 손을 데일뻔했다. 예전 같았으면 분명히 손도 데이고, 컵도 바닥에 떨어뜨려 깨트리고, 주전자는 주전 자데로 홀라당 쏟아서 스토브 위는 물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잠시 모든 것을 제자리에 놓아두고, 숨을 고르며 주방 의자에 앉았다. 물끄러미 주전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아까 콸콸 쏟아져 나오던 끓는 물이 마치 우리 마음속의 끓어넘치는 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화가 부글부글 끓다." "화를 벌컥 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다."라는 표현을 하나보다. 실제로 못마땅하고 성난 기분을 나타내는 '화'는 활활 타는 '불'을 사람의 감정에 비유하여 생긴 말이라고 한다.

뭐든지 알맞은 ' 정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다는 것을 삶 속에서 늘 배운다. 음식의 맛이나 물의 온도도 그 ' 정도'를 유지하기가 힘든데, 하물며 우리의 마음을 잘 다스려 조화로움의 ' 정도'를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화'를 내는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거나, 지탄의 대상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한 순간, 감정의 메시지를 상대에게 분명히 전달하기 위해 '화'를 낼 수도 있고, 때로는 처해진 상황과 그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화'가 '약'이 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펄펄 끓어오르는 '火'는 결국 또 다른 '禍'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알맞게 끓은 옥수수차는 나의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데워주겠지만, 나의 무관심으로 몇 십 분 동안 혼자 펄펄 끓게 만든 옥수수차는 그 따뜻함의 ' 정도'를 뛰어넘어 나에게 큰 화상을 입힐 수도 있었다.

매 순간 한 가지 일에 열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는 아직도 부족함 투성이다. 그나마 예전보다 조금은 차분해져서, 손에 화상을 입지 않은 것만으로도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다. 만약 손을 데었다면, 물을 올려놓은 것도 잊어버리고 연습할 만큼 사랑하는 첼로도 당분간 켤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평소 작은 일에도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程度'를 조화롭게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이미 마음속의 '正道'를 발견한 지혜로운 여행자일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해본다. 언젠가 그런 자유롭고 아름다운 길 위에 서 있는 나 자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