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16, 2015

감정의 편식



지난 하안거 동안 초심으로 돌아가서 심리학 이론의 기초를 다시 다지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인간의 지성은 진화한다는 것을 새삼 공부를 하면서 느꼈다. 대학원생일 때는 교수님이 내주신 과제물을 준비하기 위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읽었던 책들을,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읽고 공부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이든 지나간 것들은 아름답다는 표현이 과히 크게 과장된 것은 아니지 싶다. 공부도 육아도 가사도 모두 그 당시는 헉헉거리면서 힘겨워했던 것 같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면 모두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흙탕물의 진흙도 이내 밑으로 가라앉고 맑은 물이 모습을 드러내 듯,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혜롭게 견디고 인내하다 보면 인생에 햇살이 깃드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는 "힐링 " "긍정의 힘 " "행복 "이라는 단어를 미디어를 통해 자주 듣는다. 물론 모두 좋은 말이고, 인생의 불행보다는 행복을 이야기하고, 부정보다는 긍정의 힘을 강조하고, 그와 함께 치유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주 뜻깊은 여정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다소 이런 것들을 자신과 가족, 특히 우리 자녀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어르신들께서 말씀하시는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봤다."라는 표현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건강한 삶을 일컫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요즘 들어 우리가 지나치게 "인생의 단맛 "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 각별히 신경을 쓰는 부분의 하나가 바로 식습관일 것이다. 아이에게 어려서부터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하게 함으로써 아이의 육체적 성장을 돕고, 두뇌 발달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초보 엄마부터 베테랑 엄마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두루두루 살피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감정의 편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성취 " "긍정 " “행복 " 만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해 진솔한 성찰이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쓰고, 달고, 시고, 맵고, 떨떠름하고, 밍밍하고, 고소하고, 구수한 맛을 실제로 음식을 섭취하면서 혀로 느끼고 뇌로 인지하고 그 맛을 기억하는 경험을 통해, 음식에는 각기 다른 맛이 존재하며, 나는 어떤 맛을 더 선호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매우면 물을 마시고, 짜면 밥을 한 숟가락 더 먹으면서 맛을 조절한다.

이처럼 감정의 주머니 안에도 성취감, 좌절감, 당혹감, 편안함, 자신감, 창피함, 불안함, 행복감, 책임감, 해방감, 소외감, 소속감, 절망감, 만족감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공존하기에, 아이들 또한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다채로운 감정의 경험을 통해 몸소 느끼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면서 적절한 감정 조절을 학습하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되고, 나아가 공감적 이해력이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불행보다는 행복한 삶이 물론 지향되어야 한다. 동시에 불행이 죄가 아님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가난에 굶주리고 정서적으로 피폐한 삶을 우리 아이가 살아가기보다는,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마음 또한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다채로운 경험을 하기도 이전에 아주 어려서부터 오로지 행복만을, 성공만을, 긍정만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것은 아이에게 불균형한 감정의 편식을 종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빛과 어둠은 서로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또렷해진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둠 속을 비추는 작은 촛불 하나에도 감사하고, 쨍쨍 내리쬐는 불볕에 만난 시원한 나무그늘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정과 긍정을 함께 경험하면서, 자신의 삶을 보다 의미 있게 가꾸기 위해서는 긍정의 힘이 더욱 도움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아이들의 삶에 한 조각 두 조각 지혜가 쌓이기 시작할 것이며, 건강한 실패를 경험한 아이일수록 성공이 가져오는 기쁨과 만족감을 몇 배로 즐길 것이다. 이렇게 찾아온 성취감은 아이로 하여금 자신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온 과정 자체에 자부심을 안겨줄 것이며, 나아가 그 결과에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진정한 자신감을 깊이 심어줄 것이다.

아이의 식단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아붓고 있는가? 반면 우리는 감정의 편식이 가져오는 불균형에 대해서는 얼마만큼의 인내와 지혜를 쏟고 있는지, 이 아름다운 가을 날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