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ne 30, 2017

楊貴妃


드디어 곳곳에 내음이 나기 시작했다등을 비추는 햇살은 포근하고산들바람은 조심스레 머리카락을 
간지럽히기도 한다우리 모두 귀차니즘으로부터 기지개를 켜고, 밖으로 눈길과 발길을 옮겨보라는 
고결한 자연으로부터의 초대이기도 하다 그래왔듯이 우리 집은 텃밭을 일구며 마중을 나간다

나이를 먹게 되고인생의 우선순위가 견고해 지면서물건을 자제력을 잃는 경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음에도아직 책과 앞에서는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앞선다오늘 나를 황홀하게 만든 다름 
아닌 고즈넉한 꽃잎을 너울너울 흔들며 인사하던 양귀비 색감 또한 얼마나 고운지 바람도 물들일 듯하다.

나는 양귀비가 그려진 그림양귀비의 씨가 들어간 빵이나 과자양귀비만의 고혹적인 매력 모두 좋아한다
심지어 아편의 재료로 쓰인다는  毒性까지도 내게는 신비스럽기만 하다장미의 가시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에 미리 대처할 기회를 주지만양귀비의 가냘프고 여린 춤사위 뒤에 숨겨진 깊은 중독성은 
일순간 우리를 파멸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어쩌면 양귀비를 절세미인에 비유하는 이유도 이런 특성 
때문일지도 모른다실제로 양귀비가 나라의 국운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폐해를 갖고 있음은 중국의
역사나, 이전에 많은 관중을 매료시킨 영화 <광해> 봐도 감지할 있다.

사람이 무언가에 호감을 느끼는 경우 크게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자기 자신과 비슷해서거나 
혹은 자신이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을 사물이나 상대가 소유하고 있는 경우라고 하는데내가 양귀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후자의 해석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지극히 교과서적이고규범과 규칙에 순종적이며
정갈한 환경을 선호하고미리 계획을 세우고예습과 복습에 충실한 나의 성격은 양귀비의 성질과 매우
대조적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 나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정열환락탐닉에 대한 불씨를 느낄 때가 있다어쩌면
나는 양귀비의 고운 자태와 선명한 색감 그리고 취한 일렁거리는 물결을 바라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누군가를 지독히 사랑해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서상대를 ''라는 난파선에 
싣고 깊이깊이 深海로 빠져드는 느낌진공과 암흑 속의 고요를 경험하는 순간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귀비는 햇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올해도 내년에도 꽃을 피울 것이다그리고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찰나의 일탈을 꿈꿀지도 모른다.